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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게임

[MEGA CD] 진 여신전생

  • 장르: RPG
  • 개발: SIMS Co., Ltd.
  • 유통: ATLUS
  • 발매: 1994년 2월 25일

 

ATLUS의 기둥이 된 많은 작품의 사실 상 시초가 되는 작품입니다. 원판인 SFC판은 ATLUS에서 직접 제작했지만, 메가CD의 이식판은 세가의 자회사 격인 심스에서 담당했습니다.

 

기본적인 스토리의 틀은, 우연히 악마 소환 프로그램을 받은 주인공이 이후 악마를 필두로 해서 힘이 지배하는 혼돈의 세상을 만들려는 가이아 교단과, 유일신을 모시며 율법만이 지배하는 메시아 교단 사이의 싸움에서 도쿄를 누비며 종횡무진하는 스토리입니다. 악마 소환 프로그램이 있다거나, 큰 세력이 나뉘어서 싸운다거나 하는 점에서 디지털 데빌 스토리 여신전생 2의 초반 스토리를 가져와서 다듬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시기의 게임이 다들 그렇긴 하지만 약간씩 두루뭉슬하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고 애매하고 적당히 진행하거나 굳이 스토리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필수로 거쳐야하는 스토리도 약간 있는 등 메인 스토리를 중요시하는 경우에는 조금 부조리한 측면도 있긴 합니다.

 

주축이 되는 세력이 둘이나 되면서 어느 한 쪽을 편들어서 그 세력의 이념을 직접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서 반대 세력과 싸울 수도 있지만, 그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양쪽 세력을 모두 격파하는 전개도 가능합니다. 엔딩이 3가지로 나뉘게 된 것이죠. 다만 혼돈과 질서 사이의 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시리즈 초창기라 그런지 정립이 덜 되어서 선과 악의 싸움 구도를 취하는 경향이 큽니다. 대체로 질서 쪽은 선한 행동을 하거나 선택지를 고르면 기울게 되고, 반대로 혼돈 쪽은 악한 행동을 하면 기울게 됩니다. 로우~카오스 싸움 보다는 라이트~다크 싸움이라는 성격이 더 크지 않나 생각됩니다.

게임에서는 사실 상 로우로 치우치기 쉽도록 또 설계되어, 꽤 많은 이벤트가 로우에 유리하게 되어있기도 합니다. 뉴트럴이나 카오스를 꿈꾸는 플레이어에게는 약간 불합리한 부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성향을 원하는대로 편하게 조절하거나 유지하려면 원치 않는 회복소를 들락날락하거나 메인 스토리에서 거치지 않아도 되는 이벤트까지 거쳐야 하는 등, 조금은 어려운 부분이긴 합니다. 어쨌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고 외전 작품에도 영향을 준 D&D 식의 로우~카오스 구분이 제대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는 나름 게임 스토리와 시스템으로 잘 녹여낸, 꽤 흥미롭게 볼 부분인 듯 합니다.

 

다만 로우와 카오스의 대립이라고 단순하게 잘라 말하기에는 사상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도 보여주고 모든 사상이 완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대놓고 제시하는 등, 게임이 직접적으로 어느 한 세력을 무조건 편들지만은 않습니다. 각 세력의 사상이나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서슴치 않기도 하고, 타 세력에 지나치게 배타적이다보니, 사상을 통한 상대 세력의 차별과 악행이라도 이해하고 납득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게임 자체도 뉴트럴을 숨겨진 루트로 취급하지만 사실 상의 진 엔딩 취급하기도 하고... 물론 그래놓고 2편에서 로우가 진 엔딩인 것 처럼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은 역시 1편에서 로우가 진행하기 편하게 한 복선 회수인가 싶기도 하고...

 

메가 CD로 이식되면서 스토리 자체가 추가된 점은 없지만, 큰 스토리에 맞춰서 일부 컷신이 추가되기도 하고 일부 구간에서는 성우가 붙어서 나레이션이 나오기도 하는 등, 스토리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알기 쉽게 풀어주기도 하고 좀 더 알기 편해졌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세간에서 유명한 이노카시라 공원 살인사건의 예언 아닌 예언이 되었다고도 유명해진 게임이기도 합니다.

 

탐험과 전투 시스템도 기존 작품과 다를 바 없는 DRPG 방식으로, 차이점이 있다면 전작에 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층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후기 기종 수준은 아니지만 층을 넘나들게 되어있고 넓고 확장된 던전 구조를 사용하고, 함정이나 기믹 또한 제대로 사용하다보니 본격적으로 탐험을 한다는 체감이 가능합니다. 특히 최후반의 던전 카테드랄은 이런 것들이 뭉쳐져서 맵은 맵대로 넓은데 기믹이 복잡하고 함정도 곳곳에 있어서 게임의 절반은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싶은 수준입니다.

 

전투 또한 전열과 후열 개념을 집어넣어서, 전열은 공격당하기 쉽지만 물리 공격이 가능하고, 후열은 물리 공격이 불가능하지만 적의 물리 공격 또한 안 받고 타겟이 되는 확률이 내려가는 등 전열의 개념도 조금씩 정립되었습니다. 덕분에 탱딜과 힐러의 역할군을 어느정도 나눠서 진행할 수도 있게 되어 약간은 전략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후반으로 가면 힐러는 한 명만 있으면 되고 오로지 물리 딜로 패면 되는 게임이 되긴 하지만...

 

 메가 CD판에서는 아예 전열 후열 개념 자체가 애매해져서, 후열에서는 공격 타겟이 되는 확률이 낮아질 뿐 직접 공격이 가능해지는 식으로 구현되어, 전열 개념이 약간 애매하긴 합니다만 버퍼의 역할은 그대로라, 물리 딜러를 위시한 파티 구성이 효율이 좋게 되어버렸습니다. 애초에 후반으로 가면 마법을 이용한 전투가 굳이 필요가 없어지는 점도 있긴 하지만요

 

메가 CD에서는 원래 게임에 어레인지가 어느정도 가해졌는데, 시리즈화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있기 전에 이식 작업이 시작되다보니 후속작에 대한 고려 없이 리메이크가 되면서 다른 이식 버전이나 작품에 비해 꽤 독창적인 어레인지가 들어가있기도 합니다.

 

주요 캐릭터의 일러스트가 들어가고 신곡이나 나레이션이나 컷신이 추가되는 등의 변경점도 있지만, 독자적인 추가 악마나 미세한 밸런스 조정, 악마의 그래픽 조정 등과 더불어 일부 던전의 지형과 기믹 변경 등 게임성과 직접적으로 변경된 부분도 꽤 있습니다. 일러스트는 모든 캐릭터에게 붙지는 않지만 적어도 주요 캐릭터의 감정선은 알 수 있는 정도로 약간의 변화는 있기 때문에 본편보다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는데는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일부 악마는 독자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후 다른 게임에 등장하지 않은 고유한 스타일을 지니는 조금은 특별한 느낌도 있습니다. 특히 키우던 개는 악마와 합체시키면 파스칼이라는 고유 악마가 탄생하기도 하고 원작에는 없고 후속작에서나 나오던 랜덤 합체가 생겨나기도 하는 등, 약간은 원작과는 이질감이 있기도 합니다. 사실 받아들이는 문제라서 어떻게 보면 이식 특전 정도로 봐도...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2D맵에서의 표시가 내비게이션 형식으로 바뀌어, 다른 작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길 찾기 할 때 조금 보기 힘든 스타일이긴 해서, 차라리 다른 작품 스타일이 나았다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그 외에도 음악은 신곡은 괜찮은 편이지만 기존 음악은 원본이 낫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애매하게 다듬어져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밖에 없는 편입니다.

 

이제와서 돌이키면 조금 부조리한 점도 있기도 하고 약간 부실한 스토리나 성향인 부분도 있지만, 후속작에서는 제대로 맛보기 어려운 이벤트나 각 세력의 날것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는데다 본격적인 작품 스토리의 시작이다보니 어떻게 보면 많이 구식이다 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여신전생 답다 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대의 검열이나 사상, 기술력이 묻어나다보니 이후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게임 자체에 포함되어 있어서, 이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세기말의 모습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대한 생각 등, 다양한 것들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