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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게임

[Sega Saturn] 에너미 제로

  • 장르 : 서바이벌 호러
  • 개발 : Warp
  • 유통 : Warp
  • 발매 : 1996년 12월 13일

 

올드 게임 유저들에게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발표회에서 대뜸 세가 새턴 독점이라고 발표해버렸던, "에너미 제로 사건"으로 유명하지만, 난이도나 플레이 방식으로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2020년대 게임과 비교해봐도 아직도 여러모로 독보적인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스크는 총 4장으로 되어있는데, 게임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알려주는 시네마와 게임의 간단한 플레이 방식을 알려주는 Disc 0와, 본 게임이 수록된 Disc 1~3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트로 시네마는 게임의 기본 스토리를 알려주긴 하는데, 대사가 없어서 시네마 영상만 보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시놉시스를 읽어보고 보면 도입부에 대해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준수하게 잘 뽑혀있습니다. 오히려 영상을 안보고 바로 게임에 진입하면 설명 없이 시작되기 때문에 스토리를 알 수 없어서, 인트로 시네마를 꼭 보는 것을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시놉시스를 읽어보고 시작한다면 굳이 안봐도 무리는 없겠지만...

 

게임의 기본적인 골자는 우주선 안을 탐사하고 퍼즐을 풀어가며 배회하는 적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평범할 따름이지만, 배회하는 적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탐지된 적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경보음만 듣고 방향과 거리를 판단해서 피하거나 싸워야 하는, 고난이도 게임입니다. 근처에 적이 있을 때에, 적의 위치가 플레이어의 방향과 비교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조금씩 울리는 소리가 다른데, 이 울리는 소리만 가지고 위치를 판단해서 도망가거나 준비했다가 무력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도 요구합니다.

거기에 가진 총기도 그냥 쏠 수 있는게 아니라 일정 시간 차지해서 쏴야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데, 일정 이상 차지를 해버리면 오버히트해서 차지가 풀리기 때문에, 항상 모으고 다니다 필요할 때 쏘는게 아니라 정말 정확한 타이밍에 차지해서 쏴야하는 구조입니다.

거기에 탄환까지 제한이 있어서 무턱대고 소리 들리니까 마구잡이로 모아서 쏘다가는 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정말 탄환 한 발 한 발을 아껴서 쏘지 않으면 허공에 탄을 다 날리고 적에게 목숨을 헌납하는 구조가 되어버립니다. 난이도가 올라가면 한 번에 충전되는 탄환 갯수도 적어서, 일단 쏴서 잡았는데 충전소까지 갈 동안 적이 또 나타날 경우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공포감이 증가됩니다.

보이지 않는 적을 탄약 제한이 있는 총으로 정확하게 차지해서 잡아야 한다는 삼박자가 고루 갖춰지면서 난이도가 정말 산으로 가버린 게임입니다. Disc 0에 연습 모드가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감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초반에 몇 번씩 죽으면서 비로소 전투에 대한 감을 익히게 되는 골치아픈 게임입니다. 물론 전투에 대한 감을 익힌다고 해도 실제 전투가 그렇게 쉽게 풀리지만도 않지만...

 

적이 접근하면 점차로 경보음이 점차로 빨라지는데 긴박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완전 근접한 상태에서는 위기음이 별도로 나기 때문에, 게임이 의도한 진정한 공포를 맛볼 수 있기도 합니다.

 

전투의 난이도가 부조리할 정도로 높은 편이지만 퍼즐 자체는 대부분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대부분 중간중간 얻을 수 있는 힌트나 정답지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어있어서 퍼즐의 답을 알지 못해 진행을 못하는 경우는 사실 없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퍼즐을 풀기 위해 진행하는 스토리 진행도 난이도가 꽤 높다는 점입니다. 어디를 가서 뭘 해야하고 다음에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는 경우가 잘 없어서, 지도나 상황을 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찾아야 하게 되어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진행은 되지 않도록 어느정도 막혀있긴 한데, 아무런 정보 없이 진행하다보면 금새 막혀버리기 십상입니다. 잘못 다니면 목숨을 헌납하기만 반복하게 될 뿐이니, 정보나 단서가 없는 초회차나 초기에는 정말 긴장하고 조심해서 다니게 되는 플레이가 위주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어쩌면 진짜 이 게임의 주요 장르인 서바이벌 호러에 걸맞는 플레이가 유도되지 않나 싶습니다. 보통의 공포 게임이라도 적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게임은 후반부가 되면 무기로 적을 제압하며 여유있는 플레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그런게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있으니 말이죠

그것과는 별개로, 인터페이스나 조사 파트의 컨트롤은 꽤 느리기도 하고 한 번에 조금씩만 동작하거나 하기 때문에 꽤 답답한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내가 보려던 방향으로 이동시키거나 말을 거는 것도 꽤 뻑뻑하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느려서 인내심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어쩌면 게임의 진짜 어려운 점은 이런 부드럽지 않은 탐사 부분을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게임 난이도가 높은데는 독특한 세이브 방식도 한 몫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음성 녹음기를 사용해서 저장하고 불러오기를 하는데, 난이도마다 주어진 배터리를 포인트로, 저장과 불러오기를 할 때 마다 이 포인트를 소모하는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즉, 저장과 불러오기 횟수가 제한이 있어서, 무작정 진행하면서 죽다보면 해당 세이브 파일은 다시 쓸 수 없어서 지우고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플레이어로써는 심적 부담이 커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후반부로 갈 수록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많아지는데, 너무 자주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기 때문에 플레이에 신중함을 더해야 하게 되고, 그렇다고 자주라도 저장하자니 저장할 수 있는 구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저장도 못하는데 죽으면 한참을 다시 플레이를 해야하고... 악순환의 반복 같네요

이런 세이브 방식의 특징 덕분에 플레이는 보통의 공포 게임보다 긴장감도 부담감도 크긴 하지만, 반대급부로 덕분에 살아남겠다는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에는 부합한다는 생각도 크게 들긴 합니다.

 

스토리 상 배경이 우주선이라, 게임 전반적으로 기계적인 느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것이 기계로 되어있는데다 당대 그래픽의 특징도 한 몫 해서, 어둡고 음습한 느낌이 짙게 드러나다보니, 어딜 가도 안심하고 쉴 수는 없다는 압박감이나 위협감도 꽤 잘 드러납니다. 폐쇄된 우주선 내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에일리언"이나 "프레데터"의 느낌도 꽤 강하게 드는데, 디렉터가 관련한 인터뷰를 했던 적도 있다는 글이 있는걸 보면 자주 질문을 받았던 듯 합니다. 그 정도로 그런 테이스트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영화를 생각하면서 플레이하면 꽤 겹쳐보이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스토리도 3~4시간 정도면 클리어할 수 있어서 뭔가 분량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영화에서도 치열하게 겨우 살아남던 것 처럼, 실제로 게임도 상당히 난이도가 어려운 편입니다. 어렵다는 표현은 좀 이상하고, 부조리할 정도입니다. 사실 상 이지 난이도가 다른 게임에서 봤을 때는 노말보다 어려운 수준입니다. 오죽하면 난이도 때문에 하도 말이 나오다보니, 염가판이 발매될 때에 저장 횟수를 무제한으로 바꾸고 탄환 수를 몇 배로 늘린 난이도가 나온 정도라고 합니다. 난이도가 워낙 극악이다보니 금방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오래 붙잡고 있는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난이도는 차치하고라도, 소리로 적의 위치를 판단해서 적을 무력화시킨다는 컨셉 자체는 최근의 게임과 비교해도 상당히 신선한 컨셉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보통의 FPS는 눈으로 보고 소리는 상황에 따라서 보조하지만, 이 게임은 반대로 소리를 듣고 판단하고 눈은 방향이나 지형을 확인하는 보조를 하는, 반대의 형태라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적이 어느만큼 접근했는지 알기 어려운 긴장감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자체는 확실히 잘 살린 게임이지만, 그 나름대로 조작감이나 플레이에는 불편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말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라도 해보고싶다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무리해서 하기 보다는 인터넷에서 영상을 충분히 보고 판단하는 쪽이 좀 더 좋지 않나 싶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